15세기에는 독일의 인쇄술이 발명되어, 이것에 의해서 그리이스, 아라비

아의 고전의 번역출판이 용이하게 됨에 따라 유럽 사람들은 이들 고전에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상업의 발달에 따라 인간 생활

에 여유가 생기고, 고전의 부흥으로 말미암아 인간성 해방을 주장하는 휴

머니즘(humanism)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따라서 문화의 진보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16세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르네상스(renaissance)시대가

도래했다. 이 문예부흥기의 대수는 우선 기호의 정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다. 다음 그 주요한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플러스(+)와 마이너스(-) : 이 기호는 독일의 와이드만(J. Widmann)이

1489년에 라이프찌히에서 발행한 산수책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최초에는

과부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점차로 덧셈과 뺄셈을 의미하는 기호로서

사용되었다. 플러스라는 말은 그 책에서 볼 수 없으나 마이너스라는 말은

사용되고 있다.

 덧셈 기호 +는 더한다는 뜻의 라틴어 et를 줄여서 얻었고, 뺄셈 기호 -는

뺀다는 뜻의 minus를 간단히 쓴 m을 사용하다가 필기체처럼 빠르게 쓰다

-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책에서 이 기호들은 더하고 빼는

기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단순한 과잉과 부족을 뜻했었다고 한다. 그러

다가 1514년 네덜란드의 수학자 호이케(Hoecke)에 의해서 덧셈, 뺄셈의

기호로 쓰여지게 되었다.

 그런데 고대 그리수와 인도에서는 덧셈은 수를 나란히 붙여서 표시하고

뺄셈은 수를 띄어쓰기하여 표현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34라고 하면 지금의 표현으로는 3+4가 되는 것이고 3 4라고 하면
지금의 표현으로 3-4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라틴 사람들은 P와 M을 사용하
여 덧셈과 뺄셈을 표현하였다. 3P4, 3M4와 같이.
그러다가 1489년,독일의 와이드만이 자신의 글에 이 두 기호를 덧셈과 뺄셈

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프랑스 수학자 비에타라는 수학

자가 이것을 여러곳에 선전하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실질적으로 보급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정식으로 기호로써 인정을 받은 것은 1630년이었다.

 

 2) 근호( √ ) : 비인(Wien) 대학의 교수인 슈라이버(Heinrich Schreiber)는

1521년에 발행한 그의 책에서 위의 +와 -를 덧셈과 뺄셈의 의미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 루돌프(Christoff Rudolff)도 1525년에 발행한 그의 대수학

책에서도 이 +와-를 덧셈과 뺄셈의 의미로 사용했으며, 또한 그는 같은 책에서

근호의 기호 를 사용했다. 근호는 처음에는 로 표시했는데, 이것은 근을 의미

하는 root의 머리글자 r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3) 등호(=) : 이것은 영어로 처음 쓰여진 대수학책인 레코드(Robert Recorde;

1510∼1558)의 「지혜의 숫돌」(The Whetstone of Witte; 1557)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레코드는 등호로 =을 사용하는 이유로서 “길이가 같은 평

행선만큼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와 같

이 옆으로 길게 쓰여지고 있었던 것이 점점 현재의 =와 같이 짧은 길이로

된 것이다.

 

 4) 나눗셈 기호 (÷) : 스위스의 수학자 란(Johann Heinrich Rahn)이 1659년

쮜리히에서 발행한 대수학책(Teutche Algebra)에서 ÷기호를 처음 사용했다.

원래는 비를 나타내는 기호 : 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5) 소수 기호 : 현재 3.754라고 쓰는 것을 로 표기함으로써 최초로 이 소수기

호를 도입한 사람은 스테빈(Simmon Stevin ; 1548∼1620)이다.

 

 6) 부등호(>와 <) : 이것은 영국의 수학자 해리오트(Thomas Harriot; 1560∼

1621)가 죽은 지 10년 후에 발행된 그의 책(Artis Analytice Praxis)에서 발견

된다. 또한 부등호는 그로부터 또다시 1세기가 지난 후에 부케(Pierre Bouquer)

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7) 곱셈기호(×) : 이것은 영국의 수학자 오트렛(William Oughtred; 1574∼

1660)의책 「수학의 열쇠」(Clavis Mathematice; 1631)에서 찾아볼 수 있다.

 

 8) 차의 기호(∼) : 이것도 오트렛의 책 속에서 발견된다.

 

 9) 허수단위(i=) : 제곱해서 -1되는 수

     대신 i (imaginary number 의 머리글자)를 쓴 것은 오일러

     (Leonhard Euler]가 처음이라고 한다.

 

 10) 문자 기호 : 프랑스의 수학자 비에트(Francois Viete; 1540∼1603)는 기지

량과 미지량을 구별하기 위해서 기지량에 대해서는 자음(b,c,d...등)을 표시하는 문

자를 사용했고, 미지량에 대해서는 모음(a,i,o,u등)을 표시하는 문자를 사용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바와 같이, 기지량에 대해서는 알파벳의 앞의 문자

들을 사용하고, 미지량에 대해서는 알파벳의 뒤의 문자들을 사용한 사람은

데카르트이다.

 16세기 프랑스의 비에트(Viete, 1540 - 1603)는 미지의 양을 표현하는 데

알파벳의 모음(a, e, i, o, u)를 사용하였고, 이미 알고 있는 양을 표현하는

데는 알파벳의 자음을 사용하였다. 또, A, Aq, Ac와 같이 한 글자 A로 거듭

제곱들을 모두 나타내었다. 그럼으로써 기호를 여러 개 기억해야 하는 번거

로움도 피하게 되었고, 더 많은 지수의 거듭제곱을 쓰는 일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비에트의 이러한 표현은 그후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에

의하여 손질받게 된다. 데카르트는 미지의 양을 표현하는 데는 알카벳 마지막

글자들 x, y, z, 이미 알고 있는 양을 표현하는 데는 알파벳 처음 글자들 a, b,

c 등으로 쓰는 전통을 세웠다. 또, 제곱, 세제곱 등의 거듭제곱을 x^2, x^3,...와

같이 밑과 지수를 이용하여 나타내었다. 그의 기호들은 그 뜻의 명확함과

사용상의 편리함 때문에 이전의 비에트의 기호를 제치고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11) 원주율 파이(π) : 원주율을 π로 나타낸 것은 존스(William Jones)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일러, 베르누이, 르장드르등이 이것을 채용한 이후

이 기호는 정착되었다.

 우리에게 「가장좋아 하는 수는?」「가장 싫어하는 수는 무엇인가?」라는 질

문을 한다고 하자. 어떤 대답을 할까? 첫 번째 질문에는 대개 1 또는 3, 7, 9

등을 들것이고, 두 번째 질문에는 4, 13, 666 등을 답할 것이다. 이것은 동서양

문화의 차이와 개개인의 관습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조금은 색다른 질문이지만 「가장 궁금한 수는 무엇이냐?」라는 질문

을 했을 때,  반응은 다소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면서, 모르겠다, 아니면 0, 가

장큰 수, 가장 작은 수 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특별히 원주율(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호기심 많고 영리한 미래의 수학도들도 있다.

 

 먼저,‘원주율이 무엇인가?’하고 질문을 하면  대다수가 파이(π) 또는 3.14

라고 답한다.  그것도 간단히 자신있게 말한다. 때론 머뭇거리면서 하기도

한다. 물론 올바른 답은 아니다. 바르게 답하는 경우는 퍽 드물다. 그러면 원주

율은 무엇이고, 파이(π)는? 원주율이라는 것은 원주(원둘레)의 길이를 원의

지름으로 나눈 값(비율)을 말한다.

그 값은 3.1415926535…… 소수점이하가 무한인 무리수이다. 이 수 값을 간단한

기호로 파이(π)로 나타내기로 하였다. 즉 파이(π)는 원주율을 나타내는 기호

이자 수인 것이다. 끝까지 쓸 수도 없는 이 무리수를 근사값으로 간단히 3.14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주율이 무엇이냐 할 때, 3.14하면 올바른 답이 아니다.

 이 수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학에서 원의 면적을 구하는 과정을 통하여 처음으

로 접하게 된다. 파이(π)는 정말 불가사의하고 아직도, 언제까지나 우리의 호

기심과 연구의 대상인 수이다.

 놀랍게도 이 수는 기원전 2000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4000년전에 바빌로니아

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파이(π)는 자연 속에 교묘히 숨겨져 있던 무리수이

며, 음수나 허수와 같이 인간이 만들어 낸 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수학사(數學史)에서 원주율(π)의 계산(원둘레÷지름 : 소수점이하 몇

자리까지 구할 수 있으며 값이 얼마인가?) 만큼 많은 수학자들을 고생시킨 것

도 없었을 것이다. 원주율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원주의 길이를

지름의 길이로 나눈 값(비율)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직선인 지름의

길이를 재는 것은 아주 쉽지만, 곡선인 원주의 길이를 어떻게 재면 되는가가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기원전부터, 몇 천년동안 수없이 많은 수학자가, 그것

도 거의 모든수학자가 한 번은 손을 댔다는 것을 생각하면 원주율(π)의 계산

이 얼마나 큰 일이었던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707자리까지 계산하는데도

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의 고난 속에서 몇 천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

중에는 파이(π)계산에 무려 일생을 바친 수학자가 있었을 정도였다.

 이와같은 어리석음(?)때문에 지금은,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인 컴퓨터의 발명

과 함께 소수점 몇 억 자리까지도 단시간에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원주율

파이(π)는 수학의 모든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고, 또 이 수의 근사함, 불가사

의함은 수학도들에게 지금도 깊은 애정을 갖게 한다.

 

 12) 집합 기호의 유래

 ① { } : 독일의 수학자 칸토어(1845 ~ 1918)가 1895년에 쓴 원고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다. 집합 자체는 A, B, C... 등 대문자로, 원소를 나타낼 때에는

a, b, c... 등 소문자를 사용하였다.

 ② ∈ : 1903년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러셀(1872 ~ 1920)의 책에 처음

사용되었다. 원소(element)의 첫자를 의미한다.

 ③ 공집합 : 프랑스의 수학자 베일(1906 ~ 1998)이 노르웨이어 알파벳의 한

문자를 도입하였다. 그 후 활자가 없어 그리스어 알파벳의 하나인 (파이:phi)

가 사용되었다. 이 기호는 마치 영(0)이 아니다(/)를 결합하여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④ ⊂, ⊃ : 부분 집합을 나타내는 기호로 1898년 이탈리아의 수학자 페아노

가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이것은 포괄하다(contain)의 첫자에서 비롯되었다.

 ⑤ ∪, ∩ : 이 기호의 원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877년 이탈리아의 수학자

가 처음으로 사용한 논리기호 ∧, ∨에서 발전, 변형된 것으로 본다.

 

 13) 함수기호(f(χ)) : "함수"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수학에서 쓰기 시작한

사람은 라이프니쯔(G.Leibniz, 1646∼1716)였다. 그러나 함수에 f(χ)라는

기호를 쓴 것은 오일러가 처음이었다고 한다.